
일행을 기다리느랴 시간이 지체되었다.
구름에 가려진 피레네 산맥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인터넷을 통해 예습을 하도 많이 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늦어도 7시에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초조해졌다.
결국 9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고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눈앞에 펼쳐져있는 풍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떠올랐다.
숙소도 이미 예약했고 20시 전까지 가면 되니까 여유 있다고 말이다.
서두를 필요 하나 없고 즐기자고 말이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 앞에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멈추어서 사진 찍을 때의 그 고요함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1일 차에 늦게 출발하길 잘한 것 같다.
너무 일찍 출발하면 이런 풍경들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뭉쳐서 걷는다는 느낌이 들것 같다.
눈앞에 순례자를 보면서 걷는 것과
보이는 사람 하나 없이 걷는 것과는 느낌은 천지차이다
무슨 얘기를 하며 걸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행운이 따랐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결국 올 사람은 어떻게든 굴러 굴러오는구나.

오리손에 도착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부부는 팜플로나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가장 힘들다는 생장에서부터 걸어보고 싶어서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70대로 보이는 아저씨는 우리를 보면서 부럽다고 하셨다.
20대 때 여기에 와봤어야 했다고 후회하시더라.
젊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쾌락만 좇아 가장 중요한 걸 놓치며 살아오셨다 하셨다.
지금 여기에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유럽에서 젊음을 만끽할 수 있어서 부럽다는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올 수 있는 곳인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인데도
나에게 그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생각의 제약을 두며 그저 묵힌 것이다.
그 꿈은 나의 안에서 나마 찌그러져 숨 쉬고 있었는데.

오리손에서 다시 출발했다.
이제 앞으로 계속 오를 일만 남았다.
구름이 낀 피레네산맥은 신비로웠다.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느꼈다.

인생도 원래 이렇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건데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 없이 그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뒤돌아보면 보이는 풍경에 그 의미를 비로소 알아가는 게 아닐까.
작은 점들이 모여 크게 보니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인간은 작은 점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다 좋았을 것들인데.

드디어 내가 그토록 상상해 오던 풍경을 눈앞에 담을 수 있었다.
막상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고고 뭐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그렇게 간절했던 마음은 차분해진다.
당연하다는 단어에 이 느낌을 담을 수 없다.
상상 속에서의 꿈은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현실화된 꿈은 맛이 나지 않는다.


힘들지 않았는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의아해할 것이다.
애초에 나에게는 포기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하나 됨.
산티아고에 가야 한다가 아닌,
발걸음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가장 고됬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만큼이나 순수하고 맑았다.
대학교 전공을 3번이나 바꾸면서
포기가 습관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3번의 전공변경, 5년의 방황.
그 어떤 거 하나 끝까지 이루어낸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례길에 3일이나마 다녀오고 나서 느꼈다.
영혼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 인간은 저절로 하게 된다.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할 때에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만둘 이유도 없다.
이유는 인간의 영역이다.
생각이 적고, 느낌이 잔잔하면 할수록 영혼이 사랑하는 일이며,
반대로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의 요동침이 크게 느껴진다면, 그 길은 당신의 길이 아니다.
참고 견뎌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내가 글러먹은 게 아니다.
그저 안 맞는 것이다.

순례자로서의 삶은 정말 평온하고 단순하다.
숙소에 도착하면 짐을 풀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혼자 걷는듯한 느낌보다는 다 같이 걷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마치 수련원에 온듯한 그런 느낌이다.
아예 다른 세상이다.
이곳에서는 이곳만의 걱정거리가 있다.
숙소 자리 있을까?
빨래가 말라야 할 텐데.
사실 걱정할 것도 없다.
되는대로 할 뿐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이 있기에,
순례길에서 가장 크게 배우는 건 아마 이것 일지라.

내 인생 처음으로 떠난 배낭여행.
상하의 2세트, 잠옷, 양말 1개, 치약칫솔, 침낭, 수건, 일기장
침낭이 저 가방의 반을 차지했다.
짐이 적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 모든 짐이 가방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서두를 필요도 없었고, 무거운 짐을 두기 위해 코인라커를 찾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내가 다음에 순례길에 가게 된다면,
무릎 보호대와 발목보호대, 파스나 근육이완제를 챙길 것 같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내 두 다리였다.
오랫동안 걷고 나면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해주어야 한다.
피부나 관절 무릎, 건강과 관련된 물건들은 아낌없이 가져오는 게 좋다.
결국 아프지 않아야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프지 않아야 순례를 마칠 수 있을 테니.
뭐니 뭐니 해도 이 몸뚱이가 가장 중요했다.
신성한 순례길을 걸어가든 현실을 살아가든 건강한 몸이 최우선이었다.

처음으로 순례자메뉴를 먹었다.
가격은 14유로였다.
애피타이저 메인메뉴 디저트 와인까지.
저 수프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우리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바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는데,
옆자리에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다.
와인 한 모금 때문인지 그냥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순례길에 오신 거냐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는 맞다고 하시더라. (토마스라고 한다.)
프랑스 길은 4번, 북의 길, 포루투갈길... 다 합쳐서 11번 오셨다고 한다.
나는 어쩌다가 오시게 되신 거냐 물어보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연달아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심장병에 걸려 6년 전에 시한부 판정받고 5년밖에 못 산다고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 5년보다 1년 더 오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마지막일 수 있으니 마지막으로 프랑스길을 걷고 싶어 오게 되셨다고 한다.
처음에 토마스의 영어가 알아듣기 어려워서 프랑스분인가 했는데
아일랜드에서 오셨다고 하신다. 영어 악센트 때문에 듣기 어려웠나 보다.
심장이야기를 듣고 나니 말씀하실 때 숨을 헐떡이는 게 느껴졌다.
바에서 마시고 있는 것도 심지어 술이 아니라 논알코올이었다.
토마스는 내일 다시 눈을 뜨게 될지 모르는 채로 잠에 든다고 한다.
정말로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만 나올법한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나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적어도 당신의 삶에 Later라는 말은 없겠네요!
우리 모두 '나중에'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왜 죽을병에 걸리고 나서야만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죽음의 끝자락까지 가서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걸까?
그건... 겁이 나는것 뿐이다.
그래서 정당한 이유가 생길때까지 미루는 것이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을 실감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용기가 생긴다?
눈치고 뭐고 모든 것을 내 던지고 말이다.
심신이 평안할 때에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미루는 것일까?
그것은 용기가 부족한 것이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Later라는 말은 없을 텐데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단어가 Later이지 않을까?
자연은 미루는 법이 없다.
암 4기에 오른쪽 턱이 없는 사람.
대학 졸업 후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자신을 찾으러 온 친구.
일과 대학교를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오다 갑자기 번아웃이 와서 휴학하고 온 기자언니.
까미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다.
현실이라는 폭풍 속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용기를 내어 대피소로 온 사람들.
순례길은 대피소인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며 자신과 마주 보는 것이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허무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있었던 모든 과정을 겪고 온 자신을 돌이켜보며
그 모든 역경 속에서 다시금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가 아닌
자신으로 돌아오는 순례가 진정한 목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