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은 정말 좋은 도피처였다.
그 길 위에 서면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없기 때문이다.
그저 눈앞에보이는 이정표만 보며 걸으면 되니까.

그곳은 마치 다른 세계와도 같았다.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그런느낌.
좋은사람들과함께 순간을 즐기면 될 뿐이였다.
현실이란 무엇이고 무엇으로부터의 도피란 말인가.
Buen Camino
이 마법과도 같은 한마디에 우리는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순례길은 혼자걷는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길 위에 서있는 모두의 길이다.
같이 걷는것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지긋이 평범하다.
무엇이 까미노를 특별하게 만드는걸까?
그건 사람들.
하나된 의지. 눈에보이지 않는 연대감.
3일이든 30일이든 순례길은 결국 끝이난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와야 하겠지.
돌아오다? 어디로 돌아오는 걸까?
현실이라는게 무엇일까.
일상이란게 현실인걸까.
조용한 스페인 북쪽에있다가 시끌벅적한 관광도시에 왔다.
복잡했다.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외로워졌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안정감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어버렸다.
원래 혼자 왔는데.

여행 가기전에는 딱딱했는데
일주일간의 긴 여행을 끝내고나서는 유해졌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할까.
아, 까미노에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나는 역시 모험하는걸 사랑하는구나.
이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영혼이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몬세라트위에서 저 멀리 길이 보였다.
그 길을따라 차가 움직이더라.
노자가 도덕경에서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기운을 "道"- 도 라 칭한 이유가
길이있고 그 위에 만물이 변화한다고 하기때문이다.
길을 따라 상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변화하게 하는것.
순례길과 길아님.
이상과 현실.
길위에서는 변화하고 움직인다.
길밖에서는 변화하지않는다.
길과 길 아님이 서로 공존해야
길과 길 아님이 생긴다.
이 둘은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자유와 도피의 상징이였던 순례길은 그저 길이였다.
특별한것도 그 어떤것도 없었다.
그 길이 특별한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것이 특별한것이였다.
원래 길이있고 그 길위로 무언가가 움직이며 변화하는거라 생각했다.
순례길이있고 그 길위를 순례자가 걷는다.
바르셀로나에서 공허한 마음으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오른쪽에 나무에 줄지어서 개미들이 이동하고있지않던가.
나무에는 길도 그 어떤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길이라는건 흐르는것.
강물의 흐름과 물을 구별할 수없듯, 그 자체가 길이되고 흐르는것이다.
순례길도 마찬가지다.
순례길은 순례자들의 흐름이자 의지이다.
순례길을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강물처럼 흐르고 있지 않던가.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그때 마침 순례자 친구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Buen Camino
아,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며 걸어가고 있는거구나.
현실과 이상 그둘을 어찌 나눌 수있겠는가.
애초에 구분을 못하는것이 아니던가.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 또한 자신의 길이다.
결국 모든이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고 있는 것.
일상의 아름다움과 꿈과 현실의 간극이 줄어들면 줄어들 수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독일로 돌아가도 순례길에서 벗어난게 아니다.
애초에 순례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지 않았던가.
어디로 가는걸까. 산티아고? 무엇을향해?
나 자신에게로.
마지막으로 연금술사에서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소개하며 여행기를 마치고자 한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
현자는 젊은이에게 자신의 저택을 둘러보고 오라며 대신 찻숟갈의 기름을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떄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두시간뒤 현자에게 돌아왔을때 현자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대는 내 집 식당에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꽃혀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살펴오았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이번에는 반대로 마음껏 저택을 구경하라고 주문했다.
그러고 다시 젊은이에게 현자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