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독일대학

뮌헨공대 1년 다니고 자퇴한 이유

by 달음 dalum 2023. 6. 9.
반응형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아마 독일 유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일 것입니다.

독일 대학은 입학이 쉽고 졸업이 어렵습니다.

저 또한 그걸 알고도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 학사과정에 지원했고요.

2년 정도 독일어 공부하다 보면 C1정도의 레벨까지 누구나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포기한 이유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전반적인 한국대학과 독일대학의 문화 차이,

높은 전문성과 어마어마한 과제량,

이 많은 학업양을 견뎌 낼 흥미와 열정.

크게 이 3가지의 요인이 저를 자퇴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게 이 글의 목표입니다.

 

 

 

 

독일 유명 대학은 졸업하기 더더욱 어렵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대학 다니냐는 말에 뮌헨 공과대학에서 Informatik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독일인의 반응과 제가 자라온 한국, 일본인의 반응과 전혀 달랐습니다.

 

 

유명한 대학교에서 공부하네?
와... 힘들겠다...


그렇습니다.

세계 랭킹에 드는 명문대학이어도 유명할 뿐,

다른 평범한 대학과 비교해서 졸업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독일 내에서는 말이죠.  졸업하기 어려운 만큼, 그 노고를 인정해 줍니다.

이 말을 듣고 독일 명문대학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대학 졸업을 위해 그 무거운 압박을 견뎌야 하는 거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퇴하고 벌써 3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저는 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저에게 있어 제 자신감 그 자체였습니다.

독일에서 힘들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전 제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 Semester부터 아니,

학기 시작 후 일주일도 못 버텼습니다.

 

 

 

저는 저에게 실망하고, 저 자신을 압박하고 압박해서 마치 블랙홀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전공 선택

 

제가 독일 대학지원하는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저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야?



음... 나는 프로그래머가 되어서 취직하고 싶어. 

프로그래밍 개발 쪽으로 갈래.

왜? 프로그래밍 쪽 직업은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저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 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평생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철학'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에게 비칠 나의 모습만을 생각했습니다.

 

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딱 일곱 번, 왜 그걸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질문하면,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두려움에서 그 소망이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뮌헨 공대에서 Informatik을 배워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

왜? 프로그래머가 되면 주위 친구들이 나를 멋있다고 인정해 줄 거야.

부모님은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안심하시겠지?

왜?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리고 싶지 않으니까

왜? 나는 항상 잘한다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하니까. 나는 빨리 독립해야 하니까.

왜? 그래야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으니까

왜? 부모님이 나를 키우면서 힘들어하시고 돈문제로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게 싫으니까.

왜?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들고 잘못했다는 느낌. 죄책감이 드니까.

왜? 막내라서 그런지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은 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저는 그저 돈과 안정성을 추구하며 이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포기하게 되었죠.

 

 

그럼 진정으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아나요?


 

어떠한 행동이나 그 분야에 관해 공부를 할 때,

행동을 하기 이전의 마음상태 (평온함)과

행동을 하는 의 마음상태(평온함, 가슴이 뜀)와

행동을 하고 난 후의 마음상태(평온함)를 잘 들여다보세요.

이 3가지 상태일 때의 마음이 변함없이 평온하다면, 그 행동이나 그 분야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Informatik 공부할 때 집중력이 10초 단위로 끊기거나,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고해서 무조건 그것이 무조건 전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일본문화에 아주 관심이 많아 일본학(Japanologie)을 공부한다면,

일본의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일본역사와, 일본 문화, 지리, 일본 고전문학, 고전문법, 한문등을 구체적으로 공부해야 하거든요.

학교마다 배우는 내용이 다를 수도 있지만,

독일 명문대일 경우 일본 현지에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에 걸쳐 배우는 내용을 3년(보통 4년)만에 공부한다고 합니다.

졸업할 때 목표가 일본어로 된 학술논문을 이해하는 거라고 하네요.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좋아하고 배운다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면, 이 전공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지 애니메이션,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는 1차적인 요소만을 생각해서 이 전공을 고르신다면, 많이 힘드실 겁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독일인들 조차 수업에 따라가기 힘든 것이 독일 대학의 현실입니다.

 

 

높은 전문성과 어마어마한 학습량

 

뮌헨 공대는 1학기때 필수과목 4개를 배웁니다.

(물론 선택은 자유이지만 기본적으로 4과목입니다)

이 4과목 중 2과목을 1학기에 합격하지 못하면 3월에 재시험을 봐야 하고, 재시험을 붙지 못하면

뮌헨 공대 Informatik 학사학위는 못 받습니다.

즉, 4과목 중 2과목을 무조건 1학기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럼 합격만 하면 되는 거지 뭐가 어려운데요??

 

 

네, 지금부터 알려드릴게요.

3년 전 정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느낌만 아시면 됩니다.

 

Einführung in die Informatik(EIDI)

Praktikum Grundlagen der Programming (PGdP)

 

 

 

PGdP마스코트

 

이 둘은 동시에 진행됩니다. 

  • Vorlesung 강의 일주일에 2번 90분
  • PGdP Übung 세미나? 일주일에 1번
  • 매주 HA 숙제 (기본적으로 3개씩 나오는데 난이도가 일주일공부한 내용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과제)

시험은 필기입니다...

프로그래밍 코드를 손으로 적어야 해요...

참고로 언어는 자바입니다! 공부하실 예정인 분들은 미리미리 공부해 두세요!

 

 

맨 처음 문제는 계산기 만드는 거라 조금 쉬운데, 

Regular expression 정규 표현식부터 시작되어

숙제 과제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고

(예를 들면 주사위를 던져서 이러한 규칙이 있는 어떠어떠한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만드세요)

이걸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초보자에겐 매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과제가 1개가 아닌, 기본적으로 3개입니다.

그 이상일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습니다.

 

 

Einführung in die Rechnerarchitektur 

 

이 수업은 말 그대로 컴퓨터 구조를 배우는 과목입니다.

컴퓨터 구조란 그 말대로 컴퓨터 구조인데,

마냥 구조만이 아니라 원시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웁니다.

  • 컴퓨터구조 2진법 연산부터 시작해서
  • Assembler Programmieren 어셈블리어를 일주일채 안되어 배웁니다. 그것도 정말 구체적으로요. 문제도 풀고, 프로그래밍도 합니다.
  • Mikroprogrammierung, VHDL 즉 C언어 그 이전의 컴퓨터 친화적(?)인 언어를 배웁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언어를 4개 배워야 합니다.
  • CPU의 클락?을 계산합니다!

 

이 수업의 구성은

  • 강의 일주일에 2번 
  • 세미나 일주일에 2번 (문제 풀어요)

숙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주 문제집을 주는데 풀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Diskrete Strukturen 

  • 강의 일주일에 2번
  • Übung 1번
  • 매주 숙제 (팀으로 제출)

수학은 단순히 Relation, Graph theory부터 아예 모르게 되어서 가장 먼저 포기한 과목입니다ㅎㅎ

 

 

나가며

 

변명을 적은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네요..

사실 독일이라는 나라의 교육문화와, 제가 생각했던 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고등학생 때 독일대학에서는 그저 1, 2학년부터 전공공부를 할 수 있다(=더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는 인식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 홈페이지 들어가서 커리큘럼을 보고,

Modulhandbuch를 읽어도 직접 공부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도 있고요.

 

무엇보다 1학기 초반에 보이던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도 보였고,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뮌헨 살 때 같이 살던 친구가 자기 건축학 배우다가 중단했다고 했을 때,

사실 저는 의지가 약해서 그만 두거네 이랬죠.

근데  제가 막상 당해보니(?) 이해가 가더라고요.

 

독일 유튜브 보면 대학생들은 대게 Studiengangwechsel 전공변경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여러 전공을 공부하면서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전공 바꾸는 것에 심각하게 반응하죠...

 

무엇보다 가장 큰 인식은

대학=취직하기 위한 수단 이 아닌, 대학=진짜 원하는 공부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진지하게 공부하는 분위기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퀄리티 좋고 깊게 배울 수 있는 게 독일 대학입니다!

학생 신분으로 살아가면 보험도 싸고 교통비도, 문화생활도 여러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졸업은 해야겠죠... 그게 어렵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못된 선택이란 없습니다.

모든 선택이 다 최선의 선택이며 좋은 선택입니다.

전공선택 실패했더라도, 내게 안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삶인지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